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레이트 게임 (문단 편집) === 결과 === 결국 [[크림 전쟁]]에서 양측이 정면충돌하게 되자 기술력과 산업력이 열세하고 전략적 방어자로 전력이 분산되어 있는 러시아 제국이 패배하고 강력한 해군력과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전세계 대양을 연결짓는 식민지의 항구를 다수 보유한 영국이 승리했다. 자타공인 유럽의 경찰국가였던 러시아가 패배하면서 러시아는 큰 충격에 빠지고 본격적인 개혁을 단행했다. 한편 영국은 방심하지 않고 곳곳에서 러시아의 진출을 견제하기 위한 군사-외교적 공작을 벌이고 다녔다. 그나마 [[베이징 조약]]으로 [[청나라]]로부터 [[외만주]]를 떼어가서 마침내 제대로 바다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저 멀리 서쪽에서 연해주까지 함대가 날아서 갈 수도 없었고 당시엔 [[북극항로]] 같은 것이 없었으며 지금도 북극항로는 말로만 존재하는 전설 속 무언가 취급받는 수준의 개노답 뻥 항로 상태를 못 벗어나고 있지만 [[지구 온난화]] 때문에 점점 눈길을 끌고 있긴 하다. 심지어 연해주를 통한 확장도 [[러일전쟁]]에서 깨지면서 처참히 박살났다. 결국 러시아는 2차대전 이후 쿠릴 열도를 획득하면서 대양 진출에 성공하게 되었다. 물론 이미 캄차카 반도를 통해 부동항을 얻었지만 위치가 위치인지라 있으나 마나한 지역이었다. 거기다 아편전쟁 이후 [[청일전쟁]] 이전까지는 영국이 청나라 편을 들고 오히려 일본과 협력해 러시아를 막는 입장이었다.~~덕분에 조선은 청일 양국에 끼여 숨도 제대로 못 쉬게 되었지만~~ 물론 당대 열강 중 산업화면에서 제일 후발주자였던 [[일본 제국]] '''혼자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고 실제로 인명피해도 매우 많았으나''' 영국의 엄청난 지원 덕에 승리할 수 있었다.[*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이 사용한 전함들은 당시 영국 조선소에서 만들어 일본에 판매했던 최신형 전함들이었고 일본 해군의 장군들 대부분도 영국에서 교육을 받았다. 거기에 전비 조달을 위해 발행한 일본 국채도 영국계 자본이 매입해 준 건 덤.] 러시아 제국의 최강 발트 함대를 비롯한 해군력은 일본에 완전히 박살난 상황이었고 더 이상의 해양 진출을 노릴 수단조차 사라졌다. 반면 영국은 큰 피해 없이 일본을 통해 러시아의 해군력과 극동의 거점을 박살낼 수 있었으므로 실제론 영국의 완승이었던 셈. 한편 [[독일 제국]]이 엄청나게 팽창하고 있었으며 페르시아에선 민중 봉기가 일어나던 상황이었다. 영국과 러시아는 독일 제국을 견제하고 페르시아 지역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. 결국 1907년 [[상트페테르부르크]]에서 양 측이 [[영러협상]]을 맺게 되었고 양 측이 프랑스와 더불어 동맹을 체결하면서 그레이트 게임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. 그러나 이후의 전개를 보면 영국과 달리 러시아가 국력을 상당부분 보존했다고 할 수 있다. 후속국가인 [[소련]]은 러시아 제국의 강역의 대부분을 보존하였고 [[소련 붕괴]]라는 심각한 상황[* 동/중부 유럽 국가들의 독립 요구 외에도 러시아내 소수민족들의 거센 독립 요구가 여러 곳에서 터져나왔다. 이 중 유명한 것이 러시아의 캅카스 지방에서 일어난 체첸인들의 무장 독립운동인 [[체첸 전쟁]]이 있다.]에서도 러시아 연방은 끝내 소련의 강역의 75%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. 반면 영국은 러시아와 달리 그레이트 게임 시기의 [[대영제국]]의 영토를 보존하는 데 실패했고 전성기 기준으로 99%에 가까운 영토를 죄다 상실하고 말았다. 사실 그레이트 게임 기간에도 [[대영제국]]을 비롯한 [[식민제국]]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고 세계적인 [[민족주의]]의 발흥 이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까지 이르렀다. 오죽하면 같은 영어권인 [[캐나다]]마저도 자치권을 허용하면서 통제력을 상실했을 정도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